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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인간

by Man_from 2022. 8. 23.

한 1년만에 다시 MBTI검사를 해보았다.

지난 첫번째 검사에서는 관리자인가? 그런 게 나왔고 이번엔 수호자가 나왔는데,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I인지 E인지, S인지 N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검사 결과 그래프의 치우침에 대한 것이다.

정확히 가운데 나눈 것 아닙니다. 정확히 보색도 아닙니다.

내 성격의 가운데성(?)에 대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20대 후반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박경철 작가의 '자기혁명'을 읽는데 책에 제시된 문제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답과 확신이 없다는 걸 깨달음. 이때부터 내 나이 40, 불혹이 되면 나의 기준, 나의 철학이 생기는 게 목표가 됨. 살다보면 자연스레 시간이 목표 달성해줄 거라 믿음.

2. 30대 초반 --- 취업하려 2차 임원면접을 보는데 대표님이 나의 온라인 인적성검사 결과지를 팔락거리며 말씀하심. "이런 점수는 처음 봤다. 적성검사는 80점이 넘었는데 인성검사가 28점..." (한 자리 수까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20점대였다.) 그때 면접관들 앞에서 얘기했다. 하나의 질문이 주어지면 여러 경험이 동시에 떠올라서 아마 일관성 점수에서 많이 깎였을 거라고. 예를 들면 이런 거... '나는 혼자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질문에 앞에서는 혼자 밤새 과제하며 답을 찾는 게 즐거웠던 경험이 떠올라서 아니오를 택했는데, 한참 뒤 비슷한 내용의 질문이 나오면 팀원들과 조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던 기억이 떠올라 네를 택하는 경우. 이 때 처음으로 내 성격의 수치(數値)를 확인했다. 20점대.

3. 1년 전에 해본 첫번째 MBTI검사 --- 자기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계속 가지고 있었음. MBTI 유형 테스트가 하도 유행하길래 뒤늦게 한번 해봄, 내 성격을 정확히 진단해주길 바라며. 뭐.. 정확했다. 네 가지 그래프 막대기가 거의 중간에서 어느 한쪽으로 쭉 그어져 있었다. 하, 난 애매한 인간이구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나의 기질이구나.

4. 오늘 두번째 MBTI검사 --- '에너지' 파트에서 64%로 현실주의형 나온 것 제외하고 모두 60% 미만으로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이도저도 아닌데, 바뀌지도 않는 애매한 사람. 중간 인간.

 

이런 성격때문에 나는 거의 모든 입장을 이해한다. 논쟁이 붙었을 때, 이 사람의 의견도 이해가 가고, 저 사람의 말도 이해가 된다. 이해심 많고 배려심 있고 인간적인 등의 매우 따뜻한 단어로 포장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이건 걸림돌이 된다. 적어도 내가 처해왔던 상황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성격이 너무 싫다.

(어)중간이들을 위한 지침서가 나오면 좋겠다. 그냥 내 성격을 사랑하라? 이러지 말고요. 중간이들이 성격때문에 힘들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알려주세요.